그림책은 자신과 똑같은 감정으로 씨름하고 있는 이야기 속 주인공과 동일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는 아이의 마음속에 생생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정서에 대해 알게 한다. 그 감정이나 정서가 너무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그림책에서라면 아이는 도망가지 않고 그러한 감정들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다. 그림책의 은유적인 이미지는 아이가 다양한 감정들을 안전한 거리에서 두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그런 간접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기쁨, 슬픔 등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 것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혐오감인지 이름 붙이지는 못한다. 우리가 최초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반응을 통해서이다. 부모가 그 모든 감정을 보여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때 그림책 속 주인공의 반응이나 행동, 상황설정 등이 좋은 재료가 된다. 그런데, 정서가 발달하려면 다양한 감정의 이름을 알아야 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직접 느끼기도 해야 한다. 그림책은 감정이입과 공감의 기회도 제공한다. 그림책에는 사랑, 기쁨, 슬픔 등의 정서가 담겨있다. 아이들은 행동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겪는 감정적 변화도 따라한다. 그림책 속 아이가 울고 있다면, 아이는 우는 흉내를 내며 그림책 속 아이가 화를 내고 있다면, 아이도 화난 표정을 짓는다. 아이는 그림책의 내용뿐 아니라 스토리에 감정을 이입하기도 한다. 아이는 그림책을 읽다가 크게 울기도 하는데 읽어줄 때마다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다. 또한 그림책에 주인공의 위기상황이 있을 경우에 문제가 해결되면 그 극적인 긴장과 해소의 감정적 순환을 맛보기 위하여 그 장면만 반복하여 읽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따라도 해보고, 흠뻑 젖어도 보면서, 아이의 정서는 발달해간다.
요즘 큰 아이들을 보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짱나.”, “헐”, “대박”, “귀찮아.”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 안에는 엄청 서운한 마음도 있고, 당황스러운 마음도 있고, 기분이 너무 좋은 마음도 있고, 견디기 힘든 마음도 있고, 불편한 마음도 있고, 다행스러운 마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처리하지도 조절하지도 못한다. 감정을 조절하려면,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부터 되어야 한다.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알아야, 인정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처리하고 조절할 수 있다.
그림책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말해주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 그림과 글로 느껴지는 그림책 속 언어에는 똑같은 행복, 두려움, 슬픔, 즐거움, 화라도 그것이 한 가지 종류가 아니다. 같은 행복이라도, 화라도 상황에 따라서 단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기분을 말해봐!(앤서니브라운 / 웅진주니어)」는 첫 장부터 아이에게 감정에 대해서 말을 건다. ‘기분이 어때?’로 시작한 이 그림책은 아이가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돕는다. 글과 그림을 통해서 감정의 느낌을 전달한다. 주인공인 아기 고릴라가 ‘다 재미없어’라고 말할 때는 펼쳐진 두 장의 그림이 모두 흑백이다. ‘가끔은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커다란 면에 슬픈 표정의 주인공이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이 외에도 폴짝폴짝 뛰어오르고 싶을 정도로 행복한 때,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이 슬픈 때, 머리끝까지 화가 날 때, 혼날까봐 걱정이 될 때, 뭔가 궁금할 때, 깜짝 놀랄 때, 하늘을 걷는 것처럼 자신만만할 때,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때 등 다양한 감정들을 주인공의 표정과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본다면, 아이 안의 그런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발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