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생각
부모는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디지털 기술이나 새로운 미디어를 능숙하면서도 성숙한 태도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아이가 되도록 이른 시기에 디지털 미디어를 접해서 그 사용법을 배우야 할까?
"아주 이른 시기에 아이에게 미디어를 쥐여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녀의 미래를 망치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1969년 미국 CTW가 제작한 어린이교육용 텔레비전 프로그램 ‘세서미스트리트’는 교육용 동영상 시장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사인 ’아동용 텔레비전 워크샵‘은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 기회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 보건교육복지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놀이가 아닌 교육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영상이다.
그런데 유아용 조기교육동영상이 유아들의 언어 습득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워싱턴 의대와 시애틀 어린이병원 연구소가 생후 8~16개월 된 아이를 둔 부모 1,008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하루 한 시간씩 유아용 교육동영상을 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습득한 단어 수가 되레 6~8개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에는 '베이비 아인슈타인' '베이비 지니어스'와 같은 유명 프로그램이 포함됐었다. 이들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DVD시리즈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너무 이른 시기에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근시안적이고 대단히 위험하며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다.
언어는 아이가 외부의 의사소통을 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수단이다. 사실 오늘날의 아이들 환경은 옛날 가정보다는 의사소통의 기회가 적은 환경이다. 가족의 숫자가 적고 친척과 이웃과의 교류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더구나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아이가 의사소통의 자극을 받을 기회는 과거보다 줄어든 경향이 있다.
아이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많아져서 언어를 발달시킬 기회는 많아졌지만 그와 동시에 의사소통의 기회와 이웃과의 교류가 악화될 위험성 또한 많은 것이 요즈음의 가정환경이다.
디지털미디어를 접하기 보다는 바깥활동이 아이의 두뇌발달을 돕는다.
아이의 두뇌 발달이 유아 초기에 많은 부분이 이루어지면서 조기교육의 열풍이 불고 있는데 언어 발달의 기초가 없이는 사고력, 논리력, 기억력의 발달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지능 발달도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언어발달을 위해서 아이에게 디지털미디어를 보여주는 것은 쉬운 선택이다. 그러나 동영상 말고도 바깥놀이나 블록놀이, 혹은 역할놀이 등 다른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 언어는 더 발달할 수 있다.
뇌과학자들은 아이의 건강한 두뇌 발달이 가능해지는 조건을 연구해왔다.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기에 달리기, 기어오르기, 곤두박질, 균형 잡기 등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많을수록, 그리고 주변의 자연환경에 있는 사물들과 사람과 동물과 식물을 더 많이 접할수록, 아이의 감각, 그리고 특히 두뇌는 더 충실하게 발달한다. 대뇌피질 신경망의 성숙은 20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쓰기, 셈하기, 읽기를 배우고, 이는 다시 새로운 것의 기억을 가능하게 한다. 성장의 각 단계에서 아이는 건강한 두뇌 발달을 이루기 위해 특별한 발달 과정을 거치고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얻는다.
디지틸미디어의 노출을 최대한 늦추라
아이가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을 덜 받도록 하는 대신 몸을 많이 움직이게 하고 자연과 아날로그적인 것들로 가득한 환경에서 즐거움을 얻도록 인도한다면, 아이의 두뇌 발달을 촉진하는 결과를 얻는다. 아이는 그림 같은 아날로그 세상의 물건으로도 오래 놀 수 있다. 아이는 자기만의 판타지 세계를 만들고 창조적으로 새로운 것을 꾸며낼 수 있다. 아이는 친구들을 좋아해서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낸다. 디지털 미디어 노출양을 적절히 늘리면, 만 12세가 되면서 아이들은 디지털 미디어를 점점 더 자기주도적이고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너무 이른 미디어 사용은 훗날 디지털 미디어를 올바르고 자주적으로 사용하는 데 필요한 바로 그 핵심적인 능력의 발달을 방해한다.
부모가 수다쟁이가 되어라
아이의 언어 발달은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연구에 의하면 엄마가 말을 많이 해준 20개월 아이는 말을 많이 해주지 않은 아이에 비해 평균 131개나 많은 단어를 익혔다고 한다. 24개월이 되면 더 늘어나서 295개 단어나 차이가 났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아이에게 자주 말을 걸고, 아이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부모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IQ나 어휘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능검사와 언어검사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36개월 아이들은 13-24개월 때 단어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연구자들은 말하기, 읽기, 쓰기가 학업뿐 아니라 직업 성공의 핵심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어릴 때 말을 잘하는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지능이 좋다는 것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언어는 배우면 배울수록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일찍 시작하면 좀 더 일찍 문장이나 문법을 익힐 수 있다. 이것은 논리력, 사고력, 수리력에 영향을 준다.
부모가 하는 말의 다양성도 문제입니다. 부모의 말에 포함된 명사와 형용사의 종류가 다양하거나 문장이 길수록 아이들이 언어능력도 빨리 발달했다. ‘그만해’, ‘안 돼’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들의 언어능력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한니다. 아이들의 언어능력을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계속 추적해보면 영유아 때 언어능력의 격차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을 잘 익히지 못하고 언어를 이해하는 것도 더딘 아이는 글자도 빨리 익히지 못하고 읽는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보스턴 대학의 폴메뉴크는 읽기에 문제가 있는 아이는 말하는 능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출생 후 3년 동안 부모에게 말을 많이 듣고 자랐던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도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에 비해 독서능력, 철자법, 말하기, 청취능력이 뛰어났다.
입학과 동시에 부모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언어적 영향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어휘수가 느는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가 언어모델이 되어 아이와 함께 있는 사람이나 사물, 아이가 하고 있는 행동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말을 할 때에는 아이중심의 말이 더 좋다. 아이중심의 말은 억양이 전체적으로 높은 편이고, 높았다 낮아졌다 하는 횟수가 잦고 말하는 속도는 느리다. 또한 쉬운 낱말을 주로 사용하고, 낱말의 수가 적은 간단한 구조의 문장을 사용한다. 아이와 대화할 때는 별 의미 없는 말에도 크게 반응하여 아이의 호기심을 끄는 것이 좋다. 그림책을 읽는 것도 이 시기의 언어 발달에 효과적인데 아이가 흥미를 갖는 사물이나 사람, 동작 등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책으로 반복하여 읽어주어라.
동영상을 보여주며 우리 아이의 언어 발달을 돕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부모가 수다쟁이가 되어 더 많은 말들을 들려주고 아이와 더 대화를 많이 하라.